인프제 일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리뷰_마블판 대안가족서사(쿠키 영상, 결말 스포 없음)

메르구스 2023. 5. 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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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eak들의 행성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이하 가오갤 3)의 서사는 로켓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로켓의 과거 이야기와 로켓을 구하기 위한 가오갤 멤버들의 고군분투가 번갈아 나오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가오갤 3 멤버들은 '노웨어'라는 행성에서 나름의 평화를 찾아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버린 족의 '아담'이 노웨어 행성을 다짜고짜 쳐들어온다. 아담은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명을 받아 로켓의 뇌를 가지러 온 것이었다. 

이에 가만히 있을 가오갤 멤버들이 아니지. 멤버들은 총력전을 펼치지만 나름 가공할 만한 힘을 보여주는 아담에게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로켓이 부상을 당해 발작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그 상황에서 로켓의 몸에 자폭 장치가 설치돼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자폭 장치를 멈추기 위한 암호가 적혀 있는 열쇠를 구하러, 멤버들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서 다시 한 번 뭉치게 된다. 

이 대목에서 가오갤 멤버들이 거하고 있는 행성의 이름이 '노웨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노웨어 행성의 스펠링은 knowhere지만) nowhere. no where, 어디에도 없지만, now here, 지금-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마치 가오갤 멤버들 모두가 그토록 갖고 싶어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본 적 없던 가족의 존재 또는 안락한 삶처럼 느껴졌다. 가오갤 멤버들은 늘 온 우주를 떠도느라 어디서도 제대로 정착할 수 없었고, 그래서 '집'이라고 할 만한 곳을 가질 수 없었지만(no where), 역설적으로 그 모든 여정을 함께한 멤버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집이 되어주는 듯한 모습(now here)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다.

 

2. freak의 과거 

영화는 전반적으로 전작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 2보다 약간 무거운 톤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오갤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개그적인 느낌을 잃지는 않는다. 걱정마시길. 하지만 늘 강하고 똑똑하게만 보였던 로켓의 과거가 나오는 장면들은 확실히 가슴이 아파지는 포인트이긴 했다. 

로켓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너구리였던 시절, 하이 에볼루셔너리 일당에게 잡혀 가 고문을 연상케 하는 온갖 실험을 당한다. 마치 물건처럼 아무렇게나 자신을 다루는 일당들 사이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난다. 그 친구들 역시 모두 모진 실험을 당해 신체가 개조된 상태였지만. 차가운 철창을 사이에 두고도 로켓과 친구들은 따뜻한 웃음과 추억을 나누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언젠가 철창 밖을 나가 딱딱한 천장이 아닌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로켓과 친구들은 살아가지만, 실험실 밖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만다. 그 후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로켓은 지금의 가오갤 멤버들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과연 로켓의 친구들은 로켓과 함께 탈출할 수 있었을까? 

인상깊었던 장면은 로켓과 친구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담아 직접 이름을 짓는 장면이었다. 언제나 실험번호로 불리던 로켓은 그때 처음으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로켓을 떠올리고 자신의 이름을 로켓으로 짓는다. 

 

3. 가모라와 피터 

<어벤져스 : 엔드게임> 이후 피터는 실의에 빠진 채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다. 자신과 사랑을 나눴던 가모라는 죽고 없으니까. 물론 멀티버스 세계이기 때문에 다른 멀티버스에서 온 가모라가 살아 있지만, 그녀는 피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당연함. 사랑한 적 없음. ㅇㅇ) 자신을 볼 때마다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이 되곤 하는 피터를 보며 가모라는 자신은 그냥 현재의 자신일 뿐이라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라고 소리친다. 자신이 사랑했던 가모라의 모습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음을 알아가는 피터. 가모라와 피터의 사이는 어떤 결말로 향해 가게 될까? 

 

4. 하이 에볼루셔너리 : 피조물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하찮은 매드 사이언티스트 

당연히 악역이라 나쁘게 나오긴 하지만, 나는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나올 때마다 너무 짜증이 났다. ㅋㅋㅋ 너무 성격파탄자임. ㅋㅋㅋ 아무한테나 소리 지르고 협박하고...내 앞에 있었으면 죽빵 수십 대 갈겼...ㅋㅋㅋ 

맘에 드는 설정은 딱 하나였다.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자신의 피조물인(혹은 자신의 피조물이라 믿고 있는) 로켓에서 열등감을 느낀다는 설정.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아무도 부여한 적 없지만 자기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상한 사명감을 갖고 우주를 더 완벽한 곳으로 만드려는 계획을 실행한다. 그에 따라 타고난 대로 문제 없이 살고 있던 동물들을 납치해 온갖 실험을 자행하고, '진화'라는 명목의 폭력을 행사한다. 그로 인해 동물들은 직립보행과 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상태가 되지만...어떤 방법을 다 동원해도 '폭력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골머리를 썩고 있던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이제 막 언어를 배운 로켓이 더듬더듬 설명하는 이론 속에서 동물들의 폭력성을 제거할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리고...열등감에 미쳐간다. 

보통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일방적이며 창조주 한쪽에게만 절대성이 최대치로 부여된 상태다. 하지만 가오갤 3에서는 좀 달랐다. 창조주라 볼 수 있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지능이 로켓보다 부족하기 때문. 자신보다 뛰어난 피조물 로켓에게 느끼는 열등감 때문에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온갖 패악질을 부린다. 그 설정이 묘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내게 전형적인 악당, 찌질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엄청난 두뇌를 가진 것도, 엄청난 무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는데 부하들이 왜 꼼짝 못했는지도 이해가 좀 안 갔다. 성격이 하도 지랄맞아서 싸우기 싫으니까 그냥 맞춰주고 있었던 거니...?

 

5. 이상하지만, 이상적인 공동체 

가오갤 3의 멤버들은 어딘가 하나씩 다 모자란 점을 갖고 있다. 드랙스는 좀(많이) 멍청하고 맨티스는 언뜻 보면 정신력이 약해보인다. 피터도 자뻑에 빠져 일을 그르칠 때가 종종 있고 네뷸라는 감정이 부족한 것 같고 그루트는...귀여우니까 봐준다(?) 외모도 평범치가 않은데 성격도 특성도 모두들 다 freak함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서로 대화가 안 통하는 장면도 많고 ㅋㅋㅋ 서로 복장 터져하고 싸우는 장면도 많이 나온다 ㅋㅋㅋ 그게 관객들에게는 소소한 재미거리가 되지만, 자기들끼리는 맨날 짜증나 있음. ㅋㅋ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랑스럽다. 서로의 freak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꾸려 들지 않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해하려 노력하고 편을 들어주기도 하니까. 드랙스의 멍청함을 감싸주는 맨티스의 대사는 정말 감동적이다(?) -"얘가 멍청한 건 얘 잘못이 아니야." ... 

도대체가 족보를 알 수 없는 요상스러운 조합을 이루는 그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키려 하는, 조건에 휘둘려 서로를 등한시 하지 않는 모습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상하지만 이상적인 공동체. 모든 존재가 균질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보면 기겁할 모습이지만, 서로의 다름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감싸는 가오갤 멤버들의 모습이야말로 훨씬 진보적이고 진화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6. 각자가 원하는 가족, 공동체 

결말을 스포할 수는 없겠지만, 가오갤 3 멤버들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저마다의 가족을 갖게 된다. 새로운 대안 공동체가 생겨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즐기고 싶어서 봤던 가오갤 시리즈. 가오갤 3까지 보고 나서 내게는 이 시리즈가 '대안가족서사' 혹은 '대안공동체서사'로 정리가 됐다.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달라서 오히려 함께할 때 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 '차이'들이 생생히 살아 있는 세계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진보한 세계일 수 있다는 생각을 새삼 또 한 번 하게 해준 영화였다. 

 

7. 마지막 감상 - 로켓의 정체성

로켓은 가오갤 시리즈 내내 자신을 '너구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난 너구리가 아니야'라고 응수한다. 하지만 상대방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들이 부르고 싶은 대로 로켓을 부른다. 오소리라고 부르는 애도 있고, 심지어 다람쥐라고 부르는 애도 있어;;; 스펙트럼 무엇? 오소리랑 다람쥐랑 너구리는...다 너무 다르지 않니 얘들아...?

하지만 가오갤 3에서 로켓은 드디어 자신을 '너구리'라고 인정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와의 담판 때, 어린 날의 자신처럼 실험체로 잡혀온 어린 너구리들을 보고 나서 말이다. 새끼 너구리들이 갇힌 철창 팻말에는 북미에서 온 너구리라고 쓰여 있었다. 철창에서 새끼 너구리들을 꺼내 안아 올리며 로켓은 '나는 너구리 로켓이야'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오갤 3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로켓은 항상 너구리라고 불리는 걸 싫어하는 듯했다. 마치 고문에 가까운 실험을 당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기 싫다는 듯. 하지만 이 장면에 이르러 로켓이 과거의 정체성과 자신이 주체적으로 부여한 '로켓'이라는 정체성을 통합한 것 같았다. 로켓은 타고난 정체성을 인정함(너구리)과 동시에 자신이 스스로 부여한 정체성(로켓)까지 놓지 않고 가져갔다. 더불어 어린 너구리들을 구하는 장면은, 어린시절의 나를 구원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현재의 정체성과 과거의 정체성을 통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8. 쿠키 영상(1개)

쿠키...나는 아무리 봐도 쿠키가 1개인 것 같았는데, 다른 포스팅을 보니 2개였다는 말들이 있네? 엔딩크레딧 중간중간에 올라오는 짤들이 있긴 한데 그걸 쿠키로 보긴 어려울 것 같고...엔딩크레딧이 끝나고 나서 나오는 쿠키가 1개 있으니, 화장실이 급하셔도 잠깐 보고 가시길 추천드린다. 향후 마블 세계관에서 가오갤 멤버들이 어떻게 등장할지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쿠키였다.